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8년 촛불집회 (문단 편집) === 전개 === 이후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위해 2008년 4월 19일 쇠고기 전면 개방 및 검역기준 하향을 내용으로 하여 한미 쇠고기 2차 협상을 타결시켰다. 이때 한미 FTA 관련 내용은 국회의원들만 열람할 수 있었고 언론에서 일부만 보도됐을 뿐 협상 진행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반발이 온라인에서의 항의 표출과 산발적인 오프라인 시위 등으로 나타났다. 이후 4월 29일 PD수첩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방송을 내보내면서 분위기는 더욱 더 달아올랐다. 정부에 대한 불신의 증가로 5월 2일 시민 연대와 인터넷 모임에서 집회를 열었고 이런 모임들과 시민사회단체, 정당 등이 합쳐진 대책회의가 꾸려지면서 집회를 진행했다. 대책회의의 공식명칭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였다. 이러한 시위는 [[김장훈]], [[윤도현]] 등 인기 연예인을 초빙한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으며 당시 이명박 정부의 [[0교시]] 수업과 학교자율화 정책 추진으로 인해 반정부 여론의 고조로 참가한 10대 청소년의 비율이 높았다. 경찰은 행진할 경우를 대비하여 집회현장 전체를 [[차벽]]으로 둘러 차단하였고 오후 8시가 되면 해산 경고 방송을 했는데 당시에는 야간 옥외집회를 집시법에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시위가 불법이냐, 아니냐는 바로 이 야간 옥외집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하지만 당시까지는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5월 22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805221044592|#]]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중략) >정부의 방침은 확고합니다. 국민 건강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정부는 미국과 추가로 협의를 거쳐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이 국제기준과 부합하는 것은 물론, 미국인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와 똑같다는 점을 문서로 보장받았습니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수입을 중단하는 주권적 조치도 명문화하였습니다. 차제에 식품 안전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습니다. (중략) >전례 없이 임기 말에 국회를 열어주신 여야의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회기도 임기도 며칠 남지 않았지만, 여야를 떠나 부디 민생과 국익을 위해 용단을 내려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7대 국회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 주신다면, 이는 우리 정치사에 큰 공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중략)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앞으로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국민께 다가가겠습니다.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입니다. 저와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하여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5월 24일부터 촛불집회는 서울 도심의 주요도로를 점거하는 가두시위로 변했다. 5월 24일에 열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제17차 촛불문화제에서 밤새도록 해산하지 않고 남아 있던 250여명의 시위대가 다음날 새벽 4시경 해산 과정에서 충돌했는데 경찰에 대한 폭력사태가 발생하여 37명이 연행되었다. [[http://v.media.daum.net/v/2008052520070612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26/2008052600100.html|#]] 5월 26일 새벽 경찰이 시민기자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지자[[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17576|#]] 언론계에서도 촛불시위가 격화된 이유에 대하여 논란이 과열되었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8714|#]] 5월 29일 농림수산식품부가 행정안전부에 ‘미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장관고시 관보 게재’를 의뢰한 후부터는 시위대가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면서 차단선으로 설정한 경찰 버스를 뚫으려고 시도하였다. [youtube(y6ULEA98cBQ)] 당시 시위 모습 5월 31일 밤 시위대가 경찰의 차단선을 뚫고 청와대 부근인 내자·적선 사거리와 동십자 사거리까지 진출하지 경찰은 청와대로의 집단진출을 막기 위해 처음으로 [[물대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물대포 사용을 두고 과잉진압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8/nwdesk/article/2172985_30609.html|#]] 6월 1일 새벽 2시 30분경 동십자사거리에서 청와대로 진격하려는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던 중에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424576|여대생이 군홧발로 전경에게 밟히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6021807445&code=940707|#]] [[http://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835|#]] ||<#ffffff,#1f1023>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919976_STD.jpg|width=330]] || ||<#ffffff,#1f2023> 6월 1일 새벽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경찰 군홧발에 머리를 밟힌 여대생 이 모 양 || 이 사건으로 인해 반정부 여론, 경찰에 대한 반감, 시위의 폭력성이 더욱 강해졌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8/nwdesk/article/2172180_30609.html|반정부 구호 확산(뉴스데스크)]] 서울에서 시위대의 가두행진은 [[종로]], 율곡로뿐 아니라 서대문, [[신촌(상권)|신촌]] 등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기습/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참가인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광화문과 시청광장으로 고정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